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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ce of 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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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 parts per million is what many scientists, climate experts, and progressive national governments are now saying is the safe upper limit for CO2 in our atmosphere. Our mission is to inspire the world to rise to the challenge of the climate crisis—to create a new sense of urgency and of possibility for our planet.

Our H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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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times it takes a crisis to awaken us from our slumber. But once aroused, the American people can accomplish miracles." - T. Boone Pickens

Saturday, December 27, 2008

12월의 엽서 - Thank you for hearing me

2008년을 보내며...감사하는 마음에 이 시와 음악을 올립니다.

가는해 잘마무리 하시고 오는해에도 원하시는 모든 소망을 이루실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Happy New Year !!!!!!!


12월의 엽서 - 이해인

또 한해가 가 버린다고
한탄하며 우울해하기보다는
아직 남아있는 시간들을
고마워하는 마음을 지니게 해주십시오.

한해동안 받은
우정과 사랑의 선물들
저를 힘들게 했던 슬픔까지도
선한 마음으로 봉헌하며
솔방울 그려진 감사카드 한 장
사랑하는 이들에게 띄우고 싶은 12월

이제 또 살아야지요
해야 할 일 곧잘 미루고
작은 약속을 소홀히 하며
남에게 마음 닫아 걸었던
한 해의 잘못을 뉘우치며
겸손히 길을 가야합니다.

같은 잘못 되풀이하는 제가
올해도 밉지만
후회는 깊이 하지 않으렵니다
진정 오늘밖엔 없는 것처럼
시간을 아껴쓰고
모든 이를 용서하면
그것 자체로 행복할텐데......
이런 행복까지도 미루고 사는
저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십시오.

보고 듣고 말할 것
너무 많아 멀미나는 세상에서
항상 깨어 살기 쉽지 않지만
눈은 순결하게
마음은 맑게 지니도록
고독해도 빛나는 노력을
계속하게 해주십시오.

12월엔 묵은 달력을 떼어내고
새 달력을 준비하며 조용히 말하렵니다
'가라, 옛날이여
오라, 새날이여
나를 키우는데 모두가 필요한 고마운 시간들이여.'


Thank you for hearing me - Sinead O'Connor

Thank you for hearing me
Thank you for hearing me
Thank you for hearing me
Thank you for hearing me

Thank you for loving me
Thank you for loving me
Thank you for loving me
Thank you for loving me

Which means for seeing me
Which means for seeing me
Which means for seeing me
Which means for seeing me

And for not leaving me
And for not leaving me
And for not leaving me
And for not leaving me

Thank you for staying with me
Thank you for staying with me
Thank you for staying with me
Thank you for staying with me

Thanks for not hurting me
Thanks for not hurting me
Thanks for not hurting me
Thanks for not hurting me

You are gentle with me
You are gentle with me
You are gentle with me
You are gentle with me

Thanks for silence with me
Thanks for silence with me
Thanks for silence with me
Thanks for silence with me

Thank you for holding me
And saying "I could be"
Thank you for saying "Baby"
Thank you for holding me

Thank you for helping me
Thank you for helping me
Thank you for helping me
Thank you, thank you for helping me

Thank you for breaking my heart
Thank you for tearing me apart
Now I've a strong, strong heart
Thank you for breaking my heart

Thursday, December 25, 2008

가슴이 따뜻해지는 이야기 " 한그릇의 가께소바 (一杯のかけそば)"

언젠가부터 사람들의 마음이 많이 차가워진것 같습니다...이 이야기처럼 모두들 따뜻한 마음을 안고 새해에는 좋은소식들만 들렸으면 좋겠습니다...

Merry Christmas & Happy New Year ...^^

한그릇의 가께 소바

해마다 섣달 그믐날(12월 31일)이 되면
일본의 국수집들은 일년중 가장 바쁩니다.

삿포로에 있는 국수집 <북해정>도
이 날은 아침부터 눈코뜰새 없이 바빴습니다.
이 날은 일 년중 마지막 날이라서 그런지 밤이 깊어지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빨라졌습니다.
그러더니 10시가 지나자 손님도 뜸해졌습니다.
무뚝뚝한 성격의 국수집 주인 아저씨는 입을 꾹 다문채 주방의 그릇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남편과는 달리 상냥해서 손님들에게 인기가 많은 주인여자는,
임시로 고용한 여종업원에게 특별 보너스와 국수가 담긴 상자를 선물로 주어 보내는 중이었습니다.
"요오코 양, 오늘 정말 수고 많이 했어요. 새해 복 많이 받아요."
"네, 아주머니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요오코 양이 돌아간 뒤 주인 여자는 한껏 기지개를 펴면서,
"이제 두 시간도 안되어 새해가 시작되겠구나. 정말 바쁜 한 해였어."
하고 혼잣말을 하며 밖에 세워둔 간판을 거두기 위해 문쪽으로 걸어갔습니다.
그 때였습니다.출입문이 드르륵, 하고 열리더니 두 명의 아이를 데리고 한 여자가 들어섰습니다.
여섯 살과 열 살 정도로 보이는 사내애들은 새로 산 듯한 옷을 입고 있었고,
여자는 낡고 오래 된 체크 무늬 반코트를 입고 있었습니다.
"어서 오세요!"
주인 여자는 늘 그런 것처럼 반갑게 손님을 맞이했습니다.
그렇지만 여자는 선뜻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머뭇 머뭇 말했습니다.
"저…… 가께소바…… 일인분만 시켜도 괜찮을까요?……"
뒤에서는 두 아이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세 사람은, 다 늦은 저녁에 가께소바 한 그릇 때문에 주인 내외를 귀찮게 하는 것은 아닌가 해서 조심스러웠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주인 아주머니는 얼굴을 찡그리기는커녕 환한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네…… 네. 자, 이쪽으로."
난로 바로 옆의 2번 식탁으로 안내하면서
주인 여자는 주방 안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여기, 가께소바 1인분이요!"
갑작스런 주문을 받은 주인 아저씨는 그릇을 정리하다 말고 놀라서 잠깐 일행 세 사람에게 눈길을 보내다가 곧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네! 가께소바 1인분!"
그는 아내 모르게 1인분의 가께소바 한 덩어리와 거기에 반 덩어리를 더 넣어서 삶았습니다.
그는 세 사람의 행색을 보고 가께소바를 한 그릇밖에 시킬 수 없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 여기 가께소바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가득 담긴 가께소바를 식탁 가운데 두고, 이마를 맞대며 오순도순 먹고 있는 세 사람의 이야기 소리가
계산대 있는 곳까지 들려왔습니다.
"국물이 따뜻하고 맛있네요."
형이 국물을 한 모금 마시며 말했습니다.
"엄마도 잡수세요."
동생은 젓가락으로 국수를 한 가닥 집어서 어머니의 입으로 가져갔습니다.
비록 한 그릇의 가께소바이지만 세 식구는 맛있게 나누어 먹었습니다.
이윽고 다 먹고 난 뒤 150엔의 값을 지불하며, "맛있게 먹었습니다."라고 공손히 머리를 숙이고
나가는 세 사사람에게 주인내외는 목청을 돋워 인사를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 후, 새해를 맞이했던 <북해정>은 변함없이 바쁜 날들 속에서 한 해를 보내고 다시 12월 31일을 맞이했습니다.
지난해 이상으로 몹시 바쁜 하루를 보내고 10시가 지나 가게문을 닫으려고 하는데 드르륵 하고 문이 열리더니
두 명의 사내아이를 데리고 한 여자가 들어왔습니다.
주인 여자는 그 여자가 입고 있는 체크 무늬의 반코트를 본 순간,
일년 전 섣달 그믐날 문 닫기 직전에 와서 가께소바 한 그릇을 먹고 갔던 그 손님들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여자는 그 날처럼 조심스럽고 예의바르게 말했습니다.
"저…… 가께소바…… 1인분입니다만…… 괜찮을까요?"
"물론입니다. 어서 이쪽으로 오세요."
주인 여자는 작년과 같이 2번 식탁으로 안내하면서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여기 가께소바 1인분이요!" 주방 안에서, 역시 세 사람을 알아 본 주인 아저씨는 밖을 향하여 크게 외쳤습니다.
"네엣! 가께소바 1인분!"
그러고 나서 막 꺼버린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였습니다.
물을 끓이고 있는데 주인 여자가 주방으로 들어와 남편에게 속삭였습니다.
"저 여보, 그냥 공짜로 3인분의 가께소바를 만들어 줍시다."
그 말에 남편이 고개를 저었습니다.
"안돼요. 그렇게 하면 도리어 부담스러워서 다신 우리 집에 오지 못할 거요."
그러면서 남편은 지난해처럼 둥근 가께소바 하나 반을 넣어 삶았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아내는 미소를 지으면서 다시 작은 소리로 말했습니다.
"여보, 매일 무뚝뚝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인정도 없으려니 했는데 이렇게 좋은 면이 있었구려."
남편은 들은 척도 않고 입을 다문 채 삶아진 가께소바를 그릇에 담아 세 사람에게 가져다 주었습니다.
식탁 위에 놓인 한 그릇의 가께소바를 둘러싸고 도란도란하는 세 사람의 이야기 소리가 주방 안의 두 부부에게 들려왔습니다.
"아…… 맛있어요……"
"아…… 맛있어요……"
동생이 가께소바 가락을 우물거리고 씹으며 말했습니다.
"올해에도 이 가게의 가께소바를 먹게 되네요."
동생의 먹는 모습을 대견하게 바라보던 형이 말했습니다.
"내년에도 먹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어머니는 순식간에 비워진 가께소바 그릇과 대견스러운 두 아들을 번갈아 바라보며 입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이번에도, 가께소바값을 내고 나가는 세 사람의 뒷모습을 향해 주인 내외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 말은, 그날 내내 되풀이한 인사였지만
주인 내외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도 크고 따뜻함을 담고 있었습니다.

다음 해의 섣달 그믐날 밤은 어느 해보다 더욱 장사가 잘 되는 중에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북해정>의 주인 내외는 누가 먼저 입을 열지는 않았지만 밤 9시 반이 지날 무렵부터 안절부절 못하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0시가 지나자 종업원을 귀가시킨 주인 아저씨는, 벽에 붙어 있던 메뉴를 차례차례 뒤집었습니다.
금년 여름부터 값을 올려 <가께소바 200엔>이라고 씌어져 있던 메뉴가 150엔으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2번 식탁 위에는 이미 30분 전부터 '예약석'이란 팻말이 놓여졌습니다.
이윽고 10시 반이 되자, 손님의 발길이 끊어지는 것을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어머니와 두 아들, 그 세사람이 들어왔습니다.
형은 중학생 교복, 동생은 작년에 형이 입고 있던 점퍼를 헐렁하게 입고 있었습니다.
두 형제 다 몰라볼 정도로 성장해 있었는데, 아이들의 엄마는 여전히 색이 바랜 체크 무늬 반코트 차림 그대로 였습니다.
"어서 오세요!"
역시 웃는 얼굴로 맞이하는 주인 여자에게 어머니는 조심스럽고 예의바르게 물었습니다.
"저…… 가께소바…… 2인분인데도…… 괜찮겠죠?"
"넷!…… 어서 어서 자, 이쪽으로……"
세 사람을 2번 식탁으로 안내하면서, 주인 여자는 거기 있던 <예약석>이란 팻말을 슬그머니 감추고
주방을 향해서 소리쳤습니다.
"여기 가께소바 2인분이요!"
그 말을 받아 주방 안에서 이미 국물을 끓이며 기다리고 있던 주인 아저씨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네! 가께소바 2인분, 금방 나갑니다!".
그는 끓는 국물에 이번에는 가께소바 세 덩어리를 던져 넣었습니다.
두 그릇의 가께소바을 함께 먹는 세 모자의 밝은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그리고, 세 사람은 어느 해보다도 활기가 있어 보였습니다.
그들에게 방해될까봐 조용히 주방 안에서 지켜보고 있던 주인 내외는 우연히 눈이 마주치자 서로에게 미소를 지으며 흐뭇한 표정을 지어 보였습니다.
평소에는 무뚝뚝하던 주인 아저씨도 이 순간만큼은 기분좋게 웃고 있었습니다.
세 사람의 대화는 계속되었습니다.
"시로도야, 그리고 쥰아
오늘은 너희 들에게 엄마가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구나."
"……고맙다니요?…… 무슨 말씀이세요?" 형인 시로도가 물었습니다.
어머니의 말이 이어졌습니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돌아가신 아빠가 일으킨 사고로 여덟명이나 되는 사람이 부상을 입었잖니?.
일부는 보험금으로 보상해 줄 수 있었지만 보상비가 모자라 그만큼 빚을 얻어 지불하고 매월 그 빚을 나누어 갚아왔단다."
"네…… 알고 있어요."
형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습니다.
주인 내외는 주방 안에서 꼼짝않고 선 채로 계속해서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 빚은 내년 3월이 되어야 다 갚을 수 있는데, 실은 오늘 전부 갚았단다".
"네? 정말이에요 엄마?"
두 형제의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그래, 그 동안 시로도는 아침 저녁으로 신문 배달을 열심히 해 주었고, 쥰이는 장보기와 저녁 준비를 매일 해 준 덕분에 엄마는 안심하고 회사에서 열심히 일할 수 있었단다.
그것으로 나머지 빚을 모두 갚을 수 있었던 거야."
"엄마, 형! 잘됐어요!
하지만 앞으로도 저녁 식사 준비는 제가 계속할 거예요."
"저도 신문 배달을 계속할래요! 쥰아, 우리 힘을 내자!"
형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습니다.
"고맙다. 정말 고마워!"
어머니는 아이들의 손을 움켜쥐며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그걸 보며 형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엄마, 지금 비로소 얘긴데요, 쥰이하고 제가 엄마한테 숨긴 게 있어요.
그것은요…… 지난 11월에, 학교에서 쥰이의 수업을 참관하러 오라는 편지가 왔었어요.
그리고 쥰이 쓴 작문이 북해도의 대표로 뽑혀 전국 작문 대회에, 출품하게 되어서 수업 참관일에 그 작문을 쥰이 읽기로 했다고요, 하지만 선생님이 주신 편지를 엄마께 보여드리면…무리해서 회사를 쉬고
학교에 가실 것 같아서 쥰이 일부러 엄마한테 말을 하지 않고 있었대요.
그 사실을 쥰의 친구들한테서 듣고…제가 대신 참관일에 학교에 가게 됐어요".
어머니는 처음 듣는 이야기에 조금 놀랐지만 금방 침착하게 말했습니다.
"그래…… 그랬었구나…… 그래서?……"
"선생님께서 작문 시간에, 나는 장래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라는 제목으로 작문을 쓰게 했는데 쥰은 '가께소바 한 그릇'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서 냈대요.
지금 그 작문을 읽어 드리려고 해요.
사실 전 처음에 '가께소바 한 그릇'이라는 제목만 듣고는, 여기 '북해정'에서의 일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쥰 녀석, 무슨 그런 부끄러운 얘기를 썼지?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쥰이의 작문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자, 지금부터 읽어드릴게요."
시로도는 그러면서 교복 상의 주머니에 접어서 넣어 두었던 종이 두 장을 꺼내어 펼쳤습니다.
쥰의 작문을 읽어 내려가는 시로도의 목소리는 작지만 낭랑하게 국수 가게에 울려 퍼졌습니다.
"우리 아빠는 운전을 하다 교통 사고를 내서 많은 사람들을 다치게 하고 세상을 떠나셨다.
그런데 피해자들 모두에게 보상을 해주기 위해선 보험금으로도 부족해서 많은 빚을 지게 되었다.
그 때부터 우리 가족의 고생은 시작되었다.
엄마는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하셨고, 형은 날마다 조간과 석간 신문을 배달해서 돈을 벌었다.
아직 어린 나는 돈을 벌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도 없었고, 엄마와 형은 나에게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했다.
대신 나는 저녁이면 시장을 봐서 밥을 해놓는 일을 했다.
내가 해 놓은 밥을 엄마와 형이 맛있게 먹는 걸 볼 때 나는 행복하다.
나도 우리 식구를 위해 작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빚을 하루라도 빨리 갚기 위해서 우리는 모든 것을 절약하는 생활을 했다.
엄마의 겨울 코트는 아주 오래 되어 낡고 해어졌지만 해마다 꿰매어 입으셔야 했다.
그러던 중에 재작년 12월 31일 밤에 우리 가족은 우연히 한 국수 가게를 지나치게 되었다.
안에서 흘러나오는 가께소바 국물의 냄새가 그렇게 맛있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우리 형제의 마음을 알았는지 엄마는 우리에게 을 가께소바를 사주시겠다고 했다.
우리는 그 말이 반갑고 고마웠지만 우리 형편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선뜻 가게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형과 나는 망설이다가 딱 한 그릇만 시켜서 셋이서 같이 먹자고 엄마한테 말했다.
한 그릇이라도 우리에게 가께소바를 먹이고 싶었던 엄마와, 가께소바 국물 냄새에 마음이 끌린 우리 형제는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문 닫을 시간에 들어와 가께소바 한 그릇밖에 시키지 않는 우리가 귀찮을 텐데도 주인 내외는 친절하고 반갑게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주인 내외는 양도 많고 따뜻한 가께소바를 우리에게 내놓았다.
그러고나서는 문을 나서는 우리에게 '고맙습니다!
새해엔 복 많이 받으세요!'하며 큰소리로 말해 주었다.
그 목소리는 마치 우리에게, '지지 말아라! 힘내! 살아갈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우리 가족은 그 후 일 년이 지난 작년 섣달 그믐날에도 그 가께소바 가게를 찾아갔다.
여전히 우리는 형편이 나아지지 않아 가께소바 한 그릇밖에 시킬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날도 마찬가지로 주인 내외는 친절하고 따뜻하게 우리에게 가께소바를 대접해 주었다.
'고맙습니다! 새해엔 복 많이 받으세요!' 하는 인사도 여전했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나중에 내가 어른이 되면 힘들어 보이는 손님에게 '힘내세요! 행복하세요!' 하는 말 대신 그 마음을 진심으로 담고 있는 '고맙습니다!' 하고 말해줄 수 있는 일본 최고의 국수 가게 주인이 되겠다고."
주방안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던 주인내외의 모습이 어느새 보이지 않았습니다.
형이 동생의 작문을 읽어 내려가는 사이 두 사람은 그대로 주저앉아 한 장의 수건을 서로 잡아당기며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고 있었습니다.
시로도는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쥰이 사람들 앞에서 이 작문 읽기를 마치자 선생님이 저한테, 어머니를 대신해서 인사를 해 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너는 어떻게 했니?"
어머니가 호기심 어린 얼굴로 형에게 물었습니다.
"갑자기 요청 받은 일이라서 처음에는 말이 안 나왔어요……
그렇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이렇게 말했어요.
여러분, 항상 쥰과 사이좋게 지내줘서 고맙습니다……
작문에도 씌어 있지만 동생은 매일 저녁 우리 집의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방과 후 여러분들과도 어울리지 못하고 일찍 집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그리고 동아리 활동을 하다가도 도중에 돌아와야 하니까 동생은 여러분들한테 몹시 미안해 했습니다.
솔직히 저는 동생이 <가께소바 한 그릇>이라는 제목으로 작문을 읽기 시작했을 때 부끄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가슴을 펴고 커다란 목소리로 읽고 있는 동생을 보는 사이에, 한 그릇의 가께소바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그 마음이 더 부끄러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 한 그릇의 가께소바을 시켜주신 어머니의 용기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형제는 앞으로도 힘을 합쳐 어머니를 보살펴 드릴 것입니다.
여러분, 앞으로도 쥰과 사이좋게 지내 주세요."
시로도의 말이 끝나자 어머니는 두 형제를 대견한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세 사람은 어느 때보다도 행복해 보였습니다.
다정하게 서로 손을 잡기도 하고, 무슨 이야기인가 나누며 웃다가 서로의 어깨를 다독여 주기도 하고,
작년까지와는 아주 달라진 즐거운 그믐밤의 광경이었습니다.
올해에도, 가께소바를 맛있게 먹고 나서 가께소바 값을 내며 "잘 먹었습니다."라고 머리를 숙이며 나가는 세 사람에게 주인 내외는 일 년을 마무리하는 커다란 목소리로, "고맙습니다! 새해엔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큰소리로 인사하며 배웅했습니다.

다시 일 년이 지나 섣달 그믐날이 되자 <북해정>의 주인 내외는 밤 9시가 지나고부터 <예약석>이란 팻말을 2번 식탁에 올려놓고 세 사람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다음해에도, 그 다음해에도 2번 식탁을 비워 놓고 기다렸지만 세 사람은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북해정>은 장사가 잘 되어, 가게 내부 장식도 멋지게 꾸미고 식탁과 의자도 새로 바꿨지만 2번 식탁만은 그대로 남겨 두었습니다.
단정하고 깨끗하게 놓여져 있는 식탁들 가운데에서 단 하나 낡은 식탁이 중앙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어째서 이런 게 여기에 있지?"
"낡은 이 식탁은 이 가게에 어울리지 않아."
이렇게 의아스러워하는 손님들에게 주인 내외는 '가께소바 한 그릇'의 사연을 이야기해 준 뒤 이렇게 덧붙이는 걸 잊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 식탁을 보면서 그 때 그 사람들에게 받았던 감동을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식탁은 간혹 손님들에 대한 배려와 따뜻함을 잃어가는 우리 내외에게 자극제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느 날인가 그 세 사람의 손님이 와 주었을 때, 이 식탁으로 맞이하고 싶습니다."
그 이야기는 '행복의 식탁'으로서, 손님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습니다.
일부러 멀리에서 찾아와 국수를 먹고 가는 여학생이 있는가 하면, 그 식탁이 비기를 기다렸다가 국수를 먹고 가는 사람들도 있고,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가는 가족들이 찾아와 새롭게 결심을 다지고
돌아가기도 하는 등 그 식탁은 상당한 인기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 후 몇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섣달 그믐날이 되자 <북해정>에는, 이웃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이웃 사람들이 가게문을 닫고 모두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은 5, 6년 전부터 <북해정>에 모여서 섣달 그믐의 풍습인 <해 넘기기 가께소바>를 먹은 후 제야의 종소리를 함께 들으면서, 새해를 맞이하는 게 하나의 행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날 밤도 9시 반이 지나자 생선 가게를 하는 부부가 생선회를 접시에 가득 담아서 들고 오는 것을 시작으로, 주위에서 가게를 하는 30여 명이 술이나 안주를 손에 들고 차례차례 모여들었습니다.
가게 안은 순식간에 왁자지껄해졌습니다.
그들 중 몇 명의 사람들이 2번 식탁을 보며 말했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2번 식탁은 비워 두었구먼!".
"이 식탁의 주인공들이 정말 궁금하다고".
2번 식탁의 유래를 그들고 알고 있었습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어쩌면 금년에도 빈 채로, 신년을 맞이할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인 내외는 <섣달 그믐날 10시 예약석>은 비워 둔 채, 다른 식탁에만 사람들을 앉게 했습니다.
2번 식탁에도 앉으면 좀 더 여유가 있으련만 비좁게 다른 자리에, 모여 앉아 있으련만 비좁게 다른 자리에 모여 앉아 있으면서도, 사람들은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가게 안은 가께소바를 먹는 사람, 술을 마시는 사람, 각자 가져온 요리에 손을 뻗치는 사람,
주방 안에 들어가 음식 만드는 걸 돕고 있는 사람, 냉장고를 열어 뭔가를 꺼내고 있는 사람 등등으로 떠들썩했습니다.
이야기의 내용도 다양했습니다. 바겐세일 이야기 금년 해수욕장에서 겪은 일, 돈 안내고 달아난 손님 이야기 며칠 전에 손자가 태어났다는 할머니의 이야기등으로 가게는 왁자지껄했습니다.
그런데 10시 30분쯤 되었을 때 문이 드르륵 하고 열렸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입구로 쏠리며 조용해졌습니다.
코트를 손에 든 신사복 차림의 청년 두 명이 들어왔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과 상관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자, 다시 자신들이 나누던 이야기를 마저 하기 지작했습니다.
가게 안은 다시 시끄러워졌습니다.
"미안해서 어쩌죠? 이렇게 가게가 꽉 차서…… 더 손님을 받기가……".
주인 여자는 난처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기모노를 입은 부인이 고개를 숙인 채, 앞으로 나오며 두 청년 사이에 섰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들에게 쏠렸고 부인이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저…… 가께소바…… 3인분입니다만…… 괜찮겠죠?".
그 말을 들은 주인 여자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변했습니다.
그 순간 10여 년의 세월을 순식간에 밀어젖히고 오래 전 그 날의 젊은 엄마와 어린 두 아들의 모습이 눈앞의 세 사람과 겹쳐졌습니다.
여주인은 주방 안에서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고 있는 남편에게 방금 들어온 세 사람을 가리키면서 말을 더듬었습니다.
"저…… 저…… 여보!……".
반가움과 놀라움으로 허둥대는 여주인에게 청년 중 한 명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14년 전 섣달 그믐날 밤 셋이서 1인분의 가께소바를 주문했던 사람들입니다.
그 때의 한 그릇의 가께소바에 용기를 얻어 세 사람이 손을 맞잡고 열심히 살아갈 수 가 있었습니다.
그 후 우리는 이곳을 떠나 외가가 있는 시가현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저는 금년에 의사 국가 시험에 합격하여 대학병원의 소아과 의사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년부터는 이곳에서 멀지 않은 종합병원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그 병원에 인사도 하고 아버님 묘에도 들를 겸해서 왔습니다.
그리고 국수집 주인은 되지 않았습니다만 은행원이 된 동생과 상의해서 지금까지 저희 가족의 인생 중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습니다.
그것은 섣달 그믐날 어머니를 모시고 셋이서 이곳 <북해정>을 다시 찾아와 3인분의 가께소바를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듣고 있던 주인 내외의 눈에서 어느새 뜨거운 눈물이 넘쳐흘렀습니다.
입구에서 가까운 거리의 식탁에 앉아 있던 야채 가게 주인이 처음부터 죽 지켜보고 있다가, 급한 마음에 가께소바 가락을 꿀꺽 하고 삼키며 일어나 모두에게 들릴 정도로 외쳤습니다.
"여봐요 주인 아주머니! 뭐하고 있어요? .
10여 년간 이 날을 위해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기다린, 섣달 그믐날 10시 예약석이잖아요, 어서 안내해요 안내를!"
야채 가게 주인의 말에 비로소 정신을 차린 여주인이 그제야 세 사람에게 가게 안의 2번 식탁을 가리켰습니다.
"잘 오셨어요.… 자, 어서요.…… 여보! 2번 식탁에 가께소바 3인분이요!".
주방 안에서 얼굴을 눈물로 적시고 있던 주인 아저씨도 정신을 차리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네엣! 가께소바 3인분!"
그 광경을 지켜보며 가게 안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환성과 함께 박수를 보냈습니다.
가게 밖에는 조금 전까지 흩날리던 눈발도 그치고, <북해정>이라고 쓰인 천 간판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습니다.


一杯のかけそば

この物語は、今から15年ほど前の12月31日、札幌の街にあるそば屋「北海亭」での出来事から始まる。

そば屋にとって一番のかき入れ時は大晦日である。
北海亭もこの日ばかりは朝からてんてこ舞の忙しさだった。いつもは夜の12時過ぎまで賑やかな表通りだが、夕方になるにつれ家路につく人々の足も速くなる。10時を回ると北海亭の客足もぱったりと止まる。
 頃合いを見計らって、人はいいのだが無愛想な主人に代わって、常連客から女将さんと呼ばれているその妻は、忙しかった1日をねぎらう、大入り袋と土産のそばを持たせて、パートタイムの従業員を帰した。
 最後の客が店を出たところで、そろそろ表の暖簾を下げようかと話をしていた時、入口の戸がガラガラガラと力無く開いて、2人の子どもを連れた女性が入ってきた。6歳と10歳くらいの男の子は真新しい揃いのトレーニングウェア姿で、女性は季節はずれのチェックの半コートを着ていた。
「いらっしゃいませ!」
 と迎える女将に、その女性はおずおずと言った。
「あのー……かけそば……1人前なのですが……よろしいでしょうか」
 後ろでは、2人の子ども達が心配顔で見上げている。
「えっ……えぇどうぞ。どうぞこちらへ」
 暖房に近い2番テーブルへ案内しながら、カウンターの奥に向かって、
「かけ1丁!」
 と声をかける。それを受けた主人は、チラリと3人連れに目をやりながら、
「あいよっ! かけ1丁!」
 とこたえ、玉そば1個と、さらに半個を加えてゆでる。
 玉そば1個で1人前の量である。客と妻に悟られぬサービスで、大盛りの分量のそばがゆであがる。
 テーブルに出された1杯のかけそばを囲んで、額を寄せあって食べている3人の話し声がカウンターの中までかすかに届く。
「おいしいね」
 と兄。
「お母さんもお食べよ」
 と1本のそばをつまんで母親の口に持っていく弟。
 やがて食べ終え、150円の代金を支払い、「ごちそうさまでした」と頭を下げて出ていく母子3人に、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どうかよいお年を!」
 と声を合わせる主人と女将。

 新しい年を迎えた北海亭は、相変わらずの忙しい毎日の中で1年が過ぎ、再び12月31日がやってきた。
 前年以上の猫の手も借りたいような1日が終わり、10時を過ぎたところで、店を閉めようとしたとき、ガラガラガラと戸が開いて、2人の男の子を連れた女性が入ってきた。
 女将は女性の着ているチェックの半コートを見て、1年前の大晦日、最後の客を思いだした。
「あのー……かけそば……1人前なのですが……よろしいでしょうか」
「どうぞどうぞ。こちらへ」
 女将は、昨年と同じ2番テーブルへ案内しながら、
「かけ1丁!」
 と大きな声をかける。
「あいよっ! かけ1丁」
 と主人はこたえながら、消したばかりのコンロに火を入れる。
「ねえお前さん、サービスということで3人前、出して上げようよ」
 そっと耳打ちする女将に、
「だめだだめだ、そんな事したら、かえって気をつかうべ」
 と言いながら玉そば1つ半をゆで上げる夫を見て、
「お前さん、仏頂面してるけどいいとこあるねえ」
 とほほ笑む妻に対し、相変わらずだまって盛りつけをする主人である。
 テーブルの上の、1杯のそばを囲んだ母子3人の会話が、カウンターの中と外の2人に聞こえる。
「……おいしいね……」
「今年も北海亭のおそば食べれたね」
「来年も食べれるといいね……」
 食べ終えて、150円を支払い、出ていく3人の後ろ姿に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どうかよいお年を!」
 その日、何十回とくり返した言葉で送り出した。

 商売繁盛のうちに迎えたその翌年の大晦日の夜、北海亭の主人と女将は、たがいに口にこそ出さないが、九時半を過ぎた頃より、そわそわと落ち着かない。
 10時を回ったところで従業員を帰した主人は、壁に下げてあるメニュー札を次々と裏返した。今年の夏に値上げして「かけそば200円」と書かれていたメニュー札が、150円に早変わりしていた。
 2番テーブルの上には、すでに30分も前から「予約席」の札が女将の手で置かれていた。
 10時半になって、店内の客足がとぎれるのを待っていたかのように、母と子の3人連れが入ってきた。
 兄は中学生の制服、弟は去年兄が着ていた大きめのジャンパーを着ていた。2人とも見違えるほどに成長していたが、母親は色あせたあのチェックの半コート姿のままだった。
「いらっしゃいませ!」
 と笑顔で迎える女将に、母親はおずおずと言う。
「あのー……かけそば……2人前なのですが……よろしいでしょうか」
「えっ……どうぞどうぞ。さぁこちらへ」
 と2番テーブルへ案内しながら、そこにあった「予約席」の札を何気なく隠し、カウンターに向かって
「かけ2丁!」
 それを受けて
「あいよっ! かけ2丁!」
 とこたえた主人は、玉そば3個を湯の中にほうり込んだ。
 2杯のかけそばを互いに食べあう母子3人の明るい笑い声が聞こえ、話も弾んでいるのがわかる。カウンターの中で思わず目と目を見交わしてほほ笑む女将と、例の仏頂面のまま「うん、うん」とうなずく主人である。
「お兄ちゃん、淳ちゃん……今日は2人に、お母さんからお礼が言いたいの」
「……お礼って……どうしたの」
「実はね、死んだお父さんが起こした事故で、8人もの人にけがをさせ迷惑をかけてしまったんだけど……保険などでも支払いできなかった分を、毎月5万円ずつ払い続けていたの」
「うん、知っていたよ」
 女将と主人は身動きしないで、じっと聞いている。
「支払いは年明けの3月までになっていたけど、実は今日、ぜんぶ支払いを済ますことができたの」
「えっ! ほんとう、お母さん!」
「ええ、ほんとうよ。お兄ちゃんは新聞配達をしてがんばってくれてるし、淳ちゃんがお買い物や夕飯のしたくを毎日してくれたおかげで、お母さん安心して働くことができたの。よくがんばったからって、会社から特別手当をいただいたの。それで支払いをぜんぶ終わらすことができたの」
「お母さん! お兄ちゃん! よかったね! でも、これからも、夕飯のしたくはボクがするよ」
「ボクも新聞配達、続けるよ。淳! がんばろうな!」
「ありがとう。ほんとうにありがとう」
「今だから言えるけど、淳とボク、お母さんに内緒にしていた事があるんだ。それはね……11月の日曜日、淳の授業参観の案内が、学校からあったでしょう。……あのとき、淳はもう1通、先生からの手紙をあずかってきてたんだ。淳の書いた作文が北海道の代表に選ばれて、全国コンクールに出品されることになったので、参観日に、その作文を淳に読んでもらうって。先生からの手紙をお母さんに見せれば……むりして会社を休むのわかるから、淳、それを隠したんだ。そのこと淳の友だちから聞いたものだから……ボクが参観日に行ったんだ」
「そう……そうだったの……それで」
「先生が、あなたは将来どんな人になりたいですか、という題で、全員に作文を書いてもらいましたところ、淳くんは、『一杯のかけそば』という題で書いてくれました。これからその作文を読んでもらいますって。『一杯のかけそば』って聞いただけで北海亭でのことだとわかったから……淳のヤツなんでそんな恥ずかしいことを書くんだ! と心の中で思ったんだ。
 作文はね……お父さんが、交通事故で死んでしまい、たくさんの借金が残ったこと、お母さんが、朝早くから夜遅くまで働いていること、ボクが朝刊夕刊の配達に行っていることなど……ぜんぶ読みあげたんだ。
 そして12月31日の夜、3人で食べた1杯のかけそばが、とてもおいしかったこと。……3人でたった1杯しか頼まないのに、おそば屋のおじさんとおばさんは、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どうかよいお年を! って大きな声をかけてくれたこと。その声は……負けるなよ! 頑張れよ! 生きるんだよ! って言ってるような気がしたって。それで淳は、大人になったら、お客さんに、頑張ってね! 幸せにね! って思いを込めて、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と言える日本一の、おそば屋さんになります。って大きな声で読みあげたんだよ」
 カウンターの中で、聞き耳を立てていたはずの主人と女将の姿が見えない。
 カウンターの奥にしゃがみ込んだ2人は、1本のタオルの端を互いに引っ張り合うようにつかんで、こらえきれず溢れ出る涙を拭っていた。
「作文を読み終わったとき、先生が、淳くんのお兄さんがお母さんにかわって来てくださってますので、ここで挨拶をしていただきましょうって……」
「まぁ、それで、お兄ちゃんどうしたの」
「突然言われたので、初めは言葉が出なかったけど……皆さん、いつも淳と仲よくしてくれてありがとう。……弟は、毎日夕飯のしたくをしています。それでクラブ活動の途中で帰るので、迷惑をかけていると思います。今、弟が『一杯のかけそば』と読み始めたとき……ぼくは恥ずかしいと思いました。……でも、胸を張って大きな声で読みあげている弟を見ているうちに、1杯のかけそばを恥ずかしいと思う、その心のほうが恥ずかしいことだと思いました。
 あの時……1杯のかけそばを頼んでくれた母の勇気を、忘れてはいけないと思います。……兄弟、力を合わせ、母を守っていきます。……これからも淳と仲よくして下さい、って言ったんだ」
 しんみりと、互いに手を握ったり、笑い転げるようにして肩を叩きあったり、昨年までとは、打って変わった楽しげな年越しそばを食べ終え、300円を支払い「ごちそうさまでした」と、深々と頭を下げて出て行く3人を、主人と女将は1年を締めくくる大きな声で、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どうかよいお年を!」
 と送り出した。

 また1年が過ぎて――。
 北海亭では、夜の9時過ぎから「予約席」の札を2番テーブルの上に置いて待ちに待ったが、あの母子3人は現れなかった。
 次の年も、さらに次の年も、2番テーブルを空けて待ったが、3人は現れなかった。
 北海亭は商売繁盛のなかで、店内改装をすることになり、テーブルや椅子も新しくしたが、あの2番テーブルだけはそのまま残した。
 真新しいテーブルが並ぶなかで、1脚だけ古いテーブルが中央に置かれている。
「どうしてこれがここに」
 と不思議がる客に、主人と女将は『一杯のかけそば』のことを話し、このテーブルを見ては自分たちの励みにしている、いつの日か、あの3人のお客さんが、来てくださるかも知れない、その時、このテーブルで迎えたい、と説明していた。
 その話が「幸せのテーブル」として、客から客へと伝わった。わざわざ遠くから訪ねてきて、そばを食べていく女学生がいたり、そのテーブルが、空くのを待って注文をする若いカップルがいたりで、なかなかの人気を呼んでいた。

 それから更に、数年の歳月が流れた12月31日の夜のことである。北海亭には同じ町内の商店会のメンバーで家族同然のつきあいをしている仲間達がそれぞれの店じまいを終え集まってきていた。北海亭で年越しそばを食べた後、除夜の鐘の音を聞きながら仲間とその家族がそろって近くの神社へ初詣に行くのが5~6年前からの恒例となっていた。
 この夜も9時半過ぎに、魚屋の夫婦が刺身を盛り合わせた大皿を両手に持って入って来たのが合図だったかのように、いつもの仲間30人余りが酒や肴を手に次々と北海亭に集まってきた。「幸せの2番テーブル」の物語の由来を知っている仲間達のこと、互いに口にこそ出さないが、おそらく今年も空いたまま新年を迎えるであろう「大晦日10時過ぎの予約席」をそっとしたまま、窮屈な小上がりの席を全員が少しずつ身体をずらせて遅れてきた仲間を招き入れていた。
 海水浴のエピソード、孫が生まれた話、大売り出しの話。賑やかさが頂点に達した10時過ぎ、入口の戸がガラガラガラと開いた。幾人かの視線が入口に向けられ、全員が押し黙る。北海亭の主人と女将以外は誰も会ったことのない、あの「幸せの2番テーブル」の物語に出てくる薄手のチェックの半コートを着た若い母親と幼い二人の男の子を誰しもが想像するが、入ってきたのはスーツを着てオーバーを手にした二人の青年だった。ホッとした溜め息が漏れ、賑やかさが戻る。女将が申し訳なさそうな顔で
「あいにく、満席なものですから」
 断ろうとしたその時、和服姿の婦人が深々と頭を下げ入ってきて二人の青年の間に立った。店内にいる全ての者が息を呑んで聞き耳を立てる。
「あのー……かけそば……3人前なのですが……よろしいでしょうか」
 その声を聞いて女将の顔色が変わる。十数年の歳月を瞬時に押しのけ、あの日の若い母親と幼い二人の姿が目の前の3人と重なる。カウンターの中から目を見開いてにらみ付けている主人と今入ってきた3人の客とを交互に指さしながら
「あの……あの……、おまえさん」
 と、おろおろしている女将に青年の一人が言った。
「私達は14年前の大晦日の夜、親子3人で1人前のかけそばを注文した者です。あの時、一杯のかけそばに励まされ、3人手を取り合って生き抜くことが出来ました。その後、母の実家があります滋賀県へ越しました。私は今年、医師の国家試験に合格しまして京都の大学病院に小児科医の卵として勤めておりますが、年明け4月より札幌の総合病院で勤務することになりました。その病院への挨拶と父のお墓への報告を兼ね、おそば屋さんにはなりませんでしたが、京都の銀行に勤める弟と相談をしまして、今までの人生の中で最高の贅沢を計画しました。それは大晦日に母と3人で札幌の北海亭さんを訪ね、3人前のかけそばを頼むことでした」
 うなずきながら聞いていた女将と主人の目からどっと涙があふれ出る。入口に近いテーブルに陣取っていた八百屋の大将がそばを口に含んだまま聞いていたが、そのままゴクッと飲み込んで立ち上がり
「おいおい、女将さん。何してんだよお。10年間この日のために用意して待ちに待った『大晦日10時過ぎの予約席』じゃないか。ご案内だよ。ご案内」
 八百屋に肩をぽんと叩かれ、気を取り直した女将は
「ようこそ、さあどうぞ。 おまえさん、2番テーブルかけ3丁!」
 仏頂面を涙でぬらした主人、
「あいよっ! かけ3丁!」
 期せずして上がる歓声と拍手の店の外では、先程までちらついていた雪もやみ、新雪にはね返った窓明かりが照らしだす『北海亭』と書かれた暖簾を、ほんの一足早く吹く睦月の風が揺らしていた。

Wednesday, December 17, 2008

THE WAY IT IS....

There's a thread you follow.
It goes among things that change.
But it doesn't change.
People wonder about what you are pursuing.
You have to explain about the thread.
But it is hard for others to see.
While you hold it you can't get hurt or die;
and suffer and get old.
Nothing you do can stop time's unfolding.
You don't ever let of thread. - William Stafford -

This is a poem that I had read a long time ago that left deep impression of what life is. This poem seems to suggest that if a life is journey of our lives, and we must have direction signs that will guide us to right direction.

We must follow the signs on the road, without signs we may not be able to reach the destination as planned. This can be a dream that we are chasing or could be trust and rightousness. It is my belief that this should not be changed even everything in the world had changed.

But why the poet had chosen the thread as an image? The thin threads are so fragile it is proned to being easily tangled and severed. The thread can be lost in a time indulged tragedies of lives, and can easily be diverged into the path of least resistance.

The hope is that we all can live life of chasing faith by overcoming obstacles by holding onto the thread no matter what happens during the life's journey....


삶이란 어떤 거냐 하면..

따라가는 한가닥 실이 있읍니다.
변화하는 것들 사이를 지나는 실.
하지만 그 실은 변치 않읍니다.
사람들은 당신이 무엇을 따라가는지 궁굼해 합니다.
당신은 그 실에 대해 설명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다른이들에겐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을 잡고 있는 동안 당신은 절대 길을 잃지 않을것입니다.
비극은 일어나기 마련이고, 사람들은 다치거나 죽고.
그리고 당신도 고통을 받고 늙어갈 것입니다.
당신 무엇을해도 시간이 하는 일은 막을 수가 없읍니다.
그래도 그 실을 꼭 잡고 놓지 말아야만 합니다. -윌리암 스태폴드 -

오래전에 감명깊게 읽던 시입니다. 우리가 사는 삶이 하나의 여정이라면, 방향 표지판이 있어야 한다는 뜻의 시.

그 표지판을 따라가야 길을 잃지 않고 제대로 도착지에 도달할 수 있을테니까요. 그것은 내가 쫓는 꿈일 수도 있고, 믿음이나 정의일 수도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변해도 그것만은 변하지 않고, 또 변해서도 안 될것이라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 입니다.

그렇지만 위 시인은 왜 하필이면 '실'이라는 이미지를 썼을까요? 가느다란 실은 엉키고 끊어지기 쉬우며. 시간이 제멋대로 펼쳐놓는 비극에 부대끼면서 자칫 실을 놓칠 수도 있고, 좀더 쉽고 편해 보이는 샛길로 빠져버릴 수도 있을있기 때문이 아닌지.

올곧게 따라가야할 실을 따라 어떤 역경이 온다해도 옳은 신념의 이상을 좇는 삶을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Friday, December 5, 2008

I'm Not There

I am sorry, but I’m not there

"I’m Not There" is the first biographical treatment of Bob Dylan which had earned the legendary musican’s approval. Though it is hardly the first time that a filmmaker has documented the life of America’s inscrutable troubadour. Famously mercurial, Dylan has long resisted outsiders’ attempts to find meaning in his words, whether in the context of his songs or in one of his maddeningly unrevealing interviews. Yet he is regarded by some as a national treasure, a sage whose wisdom lies hidden deep in the subtext of his freewheeling poetry.

Whether or not you buy into the Dylan idolatry may well determine your response to "I’m Not There", which makes the all too common mistake of treating its subject as a misunderstood genius. As a musician, Dylan has established himself as an icon, but as a philosopher he leaves something to be desired. He speaks in riddles, and when he tells a reporter early in the film that he’s more of a trapeze artist than a folk singer, it makes you wonder whether he’s hinting at some elusive truth or just spouting nonsense.

Todd Haynes, who wrote and directed "I’m Not There", seems to regard Dylan’s opaque ramblings as profound, though his take on the Artist Formerly Known as Robert Zimmerman is not always flattering. It is an unconventional, fragmented portrait – one reason, perhaps, that Dylan gave it his blessing...that follows no chronological order, and focuses less on the man than on his carefully tailored image. Tellingly, the film never mentions Dylan by name; he is the ghost Haynes is chasing, personified by six different characters who represent various manifestations of the singer’s elusive persona.

Haynes glosses over two of the seminal periods in Dylan’s life...his return from a near...fatal motorcycle crash and his late 70s conversion to Christianity...but perhaps that’s beside the point. "I’m Not There" is abstract expressionism, paying tribute to its hero in a fashion every bit as enigmatic and chameleon-like as the man himself. Is it a faux-documentary? Is it a biographical drama? At times, it is both. In the end, we are left with an ambitious misfire that obscures as much as it reveals about one of America’s most prominent yet well-hidden artists.

미안하지만 나는 거기에 없어

"I’m Not There"는 최초로 전설적인 뮤지션 밥 딜런의 승인을 받은 그의 일생을 다룬 전기 영화 입니다. 미국의 서정의 생명의 헤아림을 처음으로 다큐먼트한 것은 물론 아닙니다. 풍부한 표현력과 함께 예측할 수 없는 행보를 걸어온 밥 딜런은 타인들이 그의 노랫말과 거침없고 난해한 인터뷰를 통하여 모호하고 복잡한 그의 말의 진의나 의도를 짚어내려 함에 저항하고 있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일부에 의해 국가의 보물로 인정되고 있읍니다…그 누구의 지혜가 그의 자유로운 시의 행간에 깊이 숨겨진 처럼 .

이영화는 그를 둘러싼 다양한 해석과 오해 그리고 그 속에서 자유롭길 원했던 한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를 전달함에 딜런의 추종자 인가 아닌가에 따라 이영화에 대한 당신의 반응이 결정될 수있습니다 . 뮤지션 으로서, 딜런은 자신을 아이콘으로 성립합니다, 하지만 철학자로서는 그는 원하는 뭔가를 남깁니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그는 수수께끼 같은 화두를 제시하며 한기자에게 자신은포크 가수보다 줄타는 곡예사에 더가깝다고 말하며 그는 환상의 진실을 여부를 암시하는지 그냥 헛소리 떠드는지 궁금증을 일으키며 끝까지 가는 뚝심을 보여주며 다소 복잡하고 난해할 수 있는 영화가 보는 이의 마음속에 저마다 다른 의미의 울림을 줍니다.

"I’m Not There"를 직접쓰고 감독한 토드 헤인즈 감독은, 딜런의 불투명 이야기를 대단히 심오하고 감각적으로 풀어놓읍니다. 그것은 관습을 쫓지않는, 조각난 초상화 – 아마도 이하나의 이유로 딜런은 이영화에게 그의 축복을 허락 하지 않았는지...아무 순서를 따르지 않으며, 사람자체 보다 신중하게 맞춘 자신의 이미지에 초점을 맞춤에. 이 영화 에는 6명의 밥 딜런(들)이 나오지만, 그 속에는 정작 그가 존재하지 않읍니다. 어느 하나 그를 가리키지 못합니다다. 밥 딜런은 단지 밥 딜런일 뿐. 삭막한 대중의 시선 속에서 자유로워지길 원했던 한 뮤지션은 이제 대중이나 평론가들이 쳐놓은 유령 같은 그물에서 빠져나올 수 있길 바라고 있는지 모릅니다.

헤인즈 감독은 딜런의 인생에서의 중요안 2 기간을 짚고 넘어갑니다...치명적인 오토바이 사고와 그의 복귀...70년대 후반 기독교로 회귀...하지만 아마도 그다지 중요한것이 아닐지도. "I’m Not There"는 추상 표현주의, 수수께끼와 카멜레온 같은 자신과 같은 주인공에게 바치는것이 아닌지. 우리는 얼마나 더 추적해야 한 인간을 제대로 알 수 있을까...머리부터 발끝까지, 그의 모든 주변을 범죄사건 추리하듯이 파헤친다면 가능할까? 이영화는 발 딜런의 내면을 추적하고 여행하는 전기영화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 이상을 뛰어넘는 인간에 대한 의미와 예의를 담고 있읍니다.